1. 1920년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도전과 기독교 대응

 3․1운동 이후 한국 교회의 존재와 활동을 위협한 외부 요인으로 한층 간교해진 일제의 교회 탄압 정책을 들 수 있지만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도전도 그에 못지 않은 위협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3․1운동을 계기로 지식인․종교인 중심의 민족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를 인식한 청년․학생 계층에 ‘반봉건’(反封建), ‘반제국’(反帝國) 개념을 내세운 사회주의 운동은 종래 민족운동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환영을 받았다. 그리하여 민족주의 노선을 추구하던 기독교인 중에 사회주의로 개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동휘와 여운형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동휘나 여운형은 ‘공산주의자’보다는 ‘민족주의자’란 칭호가 어울린다. 이들은 한말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권 회복과 나라 독립의 가능성을 기독교에서 발견했고 그래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다가 3․1운동 어간에 ‘독립운동 기구’로서 기독교의 한계를 느끼던 차에 한국 사회에 새로운 민족운동 대안(代案)으로 떠오른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접하고 미련없이 사회주의로 재개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궁극적 신념은 ‘민족주의’였고 사회주의나 기독교는 그 수단일 뿐이었다. 3․1운동 이후 기독교인 가운데 이런 식으로 사회주의로 개종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2. 공산주의의 반기독교운동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이란 단일 사회주의 운동단체가 결성된 1921년 무렵이면 국내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조직들이 결성되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민족 독립’을 강조했던 해외 조직과 달리 국내 조직들은 처음부터 ‘반제반봉건’과 ‘계급 해방’,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공산주의 원리에 충실하였고 그 결과 종래 민족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청년․학생 계층은 물론이고 3․1운동 후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노동자․농민 계층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이런 배경에서 사회주의 단체들은 처음 출발부터 ‘반종교’(反宗敎), 특히 ‘반기독교’(反基督敎) 노선을 취하였다. 1921년 조직된 고려공산당은 정강에서 “무산군중으로 종교적 미신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과학적 문화운동 및 종교배척운동을 전개할 것”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1925년 조직된 조선공산당 역시, “과학적 지식의 보급을 꾀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자본가적 편견, 미신, 특히 종교적 미몽으로부터 탈출하게 할 것”을 ‘사상 운동’의 핵심으로 지적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기독교 신앙이 비과학적이다. 둘째, 기독교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한다. 셋째,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다’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기독교 비판에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런 비판이 3․1운동 이후 기독교의 ‘민족 운동 역량’에 실망한 청년․학생․노동자 계층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가장 결정적인 반기독교운동은 1925년 10월에 일어났다. 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승동교회에서 제 2회 조선주일학교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전국에서 3천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화요회 계열의 한양청년연맹이 주일학교대회 절정기에 해당하는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반기독교대강연회’를 개최하여 ‘반기독교’ 선전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려고 하였다. 1928년 ‘2차 조선공산당사건’이 터져 공산주의 핵심 운동 세력들이 체포되고 이후 공산주의 운동이 지하운동으로 바뀌면서 노골적인 반기독교운동은 사라졌지만 기독교와 공산주의 운동 사이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일제시대와 해방후 50년 분단의 역사를 거치면서 그 관계는 대화조차 시도하기 어려운 적대 관계로 발전하였다. 과연 사회주의(공산주의)는 기독교에 벨리알(고후 6:15)일 뿐인가?

3. 기독교 사회주의 모색

 사회주의(공산주의) 진영에서 ‘반기독교대회’, ‘반기독데이’ 같은 기독교 비판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대하여 기독교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대개 셋으로 구분되었다. 첫째 아예 관심조차 두 않고 무시하는 태도이고, 둘째는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기독교 반성의 기회로 삼자는 입장이며, 셋째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기독교와 사회주 사이에 ‘이념적 공통점’을 발견하여 둘 사이의 대화를 추구하는 입장이다. 이런 세 번째 자세는 두 사상이 대립․갈등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두 사상의 조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를 형성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미국에서는 교회의 사회 참여를 강조한 라우셴부쉬의 ‘사회 복음’(Social gospel) 운동, 일본에서는 빈민굴에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눔의 복음’을 실천했던 가가와도요히코의 ‘하나님의 나라’(神の國) 운동에서 이같은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창조적 결합을 발견할 수 있다. 1920년대 한국에서는 김창제․이대위․김준성 등 주로 기독교청년회(YMCA)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진보적 지식인들 가운데서 이런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공산주의 운동이 추구하는 폭력적 방법에 의한 ‘플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은 반대하지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리고 구약 성서의 ‘율법 공동체’와 신약 성서의 ‘초대교회 신앙 공동체’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바 계급이 없는 ‘공존 공생’(共存共生) 사회를 의미한다고 보면서 기독교와 사회주의 지향점이 같음을 강조하였다.
 ‘불’(폭력)이나 ‘혀’(이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사랑’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자유와 평등 사회, 그것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계로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공동 사회와 다를 바 없다. 1920년대 이후 기독교인들 사이에 이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1926년부터 기독교청년회 사업으로 신촌에서 시작한 시범 농촌 건설 운동이 대표적인 경우다.

 4.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연대: 신간회

 1920년대 중반 국내외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기독교와 사회주의 운동 세력들 사이에 갈등과 마찰을 빚고 있을 때 ‘적전 분열’(敵前分裂)을 우려하는 민족주의․사회주의 ‘민족 운동’ 지도자들이 이념과 신념을 초월하여 단일 민족운동 연합 전선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는 3․1운동 때 신분과 계급, 지역과 종파 장벽을 극복하고 전개된 ‘거족적 항일 독립운동’의 맥을 이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주의 경향을 취하고 있던 <조선일보> 기자들과 기독교청년회(YMCA)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새로 결성될 조직의 지도자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기독교와 타종파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어야 했는데 기독교청년회 총무를 역임한 원로 지도자 이상재(李商在)가 거론되었다. 당시 이상재는 78세 고령으로 항일 투쟁을 추구하는 사회 단체 전면에 나서기에는 어려운 형편이었고 그래서 처음엔 사양하였으나 <조선일보> 기자 신석우가 찾아와 “선생님이 안나오시면 학생들이 뒤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 하시는 것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라고 하자 두 말 않고 “그럼 나가지” 하고 회장직을 맡기로 했다.1)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단체가 신간회(新幹會)다.

 ‘단일 민족운동전선’ 신간회와 근우회에 참여한 단체나 개인은 물론이고 이를 보는 일반 사회도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두 단체의 운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우선 일제 경찰 당국은 단일 민족저항운동 세력의 확산을 경계하였다. 그리고 1929년 11월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을 계기로 신간회와 근우회 회원들이 전국적인 민중 시위를 계획하고 있음을 알고 두 단체 지휘부를 검거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신간회나 근우회는 사실상 와해 상태에 들어갔다.

 비록 4년 단명으로 끝났지만 신간회와 근우회는 한국 근대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신간회와 근우회는 3․1운동 직후 일제의 간교한 민족 내분 정책에 의해 민족운동 내부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이념과 종파를 초월하여 사회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 운동 세력들이 단일 민족운동 전선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07년의 신민회 운동이나 3․1운동에서 확인되었던 바,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파나 이념을 초월하여 연대한다”는 민족의식이 신간회와 근우회를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사에서 신간회와 근우회는 민족의 자주 독립을 ‘시대적 명제’로 인식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념이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였던 ‘공동 투쟁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회주의와는 갈등과 증오, 반목과 대결 구도 속에 80년 세월을 지내온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인과 사회주의자가 우호적인 관계에서 손을 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간회와 근우회 ‘4년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존재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1) 이문원, “신간회와 이상재”, 『월남 이상재연구』, 로출판, 1986.

                                                                                                             주건일 theway@ymca.or.kr